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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가 시작되고 아주 오랜만에 지난 주말 비가 내렸다. 여느때처럼 갑작스런 소나기는 한바탕 쏟아져 땅의 열기를 잠시나마 식혀 주었더랬다. 덕분에 주말 저녁은 내내 약간 쌀쌀할 정도로 서늘하게 보낼 수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은 역으로 이 도시를 활기차게 만든다. 화창한 날이 이어지면서 다운타운과 비치에는 소위 서양사람들로 넘쳐 흐르고 있다. 바닷가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마주치는 밝은 얼굴의 사람들을 보면서 내 표정은 참 불쌍할 정도로 짜게 식어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낀다. 나도 일이 아니라 놀러 온 거였다면 좀 신이 난 얼굴로 있었으려나?

울 어머니의 가르침을 본받아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힌 지금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만 만드는 것 같아 도무지 웃을래야 웃어지지가 않는다. 내 멘탈이 너무 나약한 건가. 나도 웃으면서 살고 싶은데.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웃어야 하겠지. 



그 누구보다 커리어우먼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던 패기와 야망에 찬 당돌한 소녀였던 내 친구는 셋째를 가졌다는 페북을 올렸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머무르다 자연스레 흘러갈 것만 같았던 또 다른 친구는 웨딩 드레스를 입어 날 놀라게 했던 것도 모자라 내년 초면 진짜 엄마가 될 거라고 한다. 이번 여름에 약혼을 하고 온 아끼는 동생, 갑작스레 결혼 소식을 알린 아끼는 대학 동창. 첫아이가 벌써 유치원 고학년이 다 되어가는 마냥 앨리스같던 친구. 이제는 과장님 명함을 가진 내 클럽순이 친구. 석사 과정에 들어간 학교 동생. 



모두의 모습이 다르듯이 그 삶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수는 없다고는 생각을 하지만, 다들 '삶의 단계'를 착실히 밟아 나가고 있다는 기분 만큼은 떨쳐낼 수가 없다. 작년 이맘때쯤, 무엇이 그렇게 나를 망설이게 했을까. 굉장히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밑바닥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영향 아래 있기 보다는 나는 내가 나의 전부이자 중심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마도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은 내 안의 심지가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 역시 나는 그정도인 사람이었던 겐가. 쯧쯧.



나는, 잘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선택해버린 이 시간들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거나 잃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과 바꿨을 때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나는 지금 여기서 얻고 있는가. 그렇지 아니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전히 여름이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내 마음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칼날같은 바람이 그립다. 코 끝이 쨍해질 정도로 차디찬 겨울 밤하늘이 눈에 밟힌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내 겨울에 대한 향수병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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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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